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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온 편지] 이적 님의 편지

작성자 양심수후원회 등록일 2019-07-02 조회수 16회 댓글수 0건

감옥에서 온 편지

 

이적 님의 편지

 

 

회장님께.

편지 반갑게 읽었습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감옥에서는 편지가 제일 반갑습니다.

영치금과 소식지도 잘 받고 있습니다.

안에 들어와 보니 양심수후원회가 참으로 큰일을 하고 있구나를 깨닫습니다. 누구나가 할수 있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을 함이 위대한 법이지요. 양심수후원회가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자기일과 양심수 뒷바라지를 하는 것 자체가 투쟁현장에 서 있는 것이고요. 군사정권 때는 뒷바라지하는 사람도 잡아서 고문했던 이유가 바로 함께 싸우는 공범으로 바라본 것이지요.

명예회장님의(이사장) 건강이 바로서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뵈면 몸은 작아도 거인을 만나는 느낌을 받곤 하지요.

명예회장님이 일구어 놓은 일이 참으로 크고 깊습니다.

그 일을 함께 일구는 회장님의 보폭 또한 역사가 기록할 것입니다.

 

저는 구형 2년 받고 최후진술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였습니다.

그곳에서나마 굴종하고 머리 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그들이 지켜보고 있겠기에 더 또렷하게 울분을 토하였습니다.

그 덕분으로 실형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리라 봅니다.

당분간 갇혀서 투쟁하겠습니다.

모레가 선고일인데 답답하게 실형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회장님, 1심 최후진술서 동본합니다.

필요한곳에 쓰시길 바랍니다.

또 편지 쓰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2019. 6. 3

이 만 적(이적 올림)

 

 

 

 

 

 

 

 

<이적 목사 최후 진술문>

 

해적선 식민지 항구가 될 것이냐?

자주와 평화의 항구가 될 것이냐?

 

80년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삼청노역장과 청송감호소에 끌려갔다 왔습니다. 삼청 최장기수로 3년간 노역과 폭력에 시달리다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저는 아직도 40여 년 전 그때의 악몽을 자주 꿉니다. 그 악몽은 지금 갇혀있는 1인실 독감 방에서도 여전히 꾸고 있습니다. 다만 바깥에서 꾸는 악몽은 40여 년 전의 악몽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구나 함을 느낄 때 소스라치게 전율을 느끼곤 합니다.

 

차이인 것은 40여 년 전의 악몽은 민주주의를 짓밟으려는 군사독재의 횡포였고 지금의 악몽은 자주가 없는 신식민지 국가의 백성으로서 외세에 탄압 당한다는 부분이 다를 뿐 신체가 구속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군사독재 지배는 당장 피부로 느껴지지만 외세가 지배하는 것은 동맹이라는 교묘한 술수 하에 진행되므로 민중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 외세의 지배는 똑같습니다. 오늘 저는 두 가지 비유를 들어서 우리 조국의 현실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의 현실에 대하여 이 법정의 재판장과 8천만 동족 및 방청객 동지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호시탐탐 남의 재산만 노리는 강도가 남의 집을 점령하여 안방에 무기를 갖다놓고 내가 너희 집을 지켜주겠다며 강제로 금품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온갖 간섭을 다합니다. 이웃에 살고 있는 친인척을 만날 때는 나에게 허가 받고 만나라, 형제끼리 교류도 함부로 하지 말라, 찬밥 따순밥까지 온갖 시비를 걸며 무기를 강매합니다. 이 꼴을 보다 못한 이집 장남이 강도들의 조상 초상화에 불을 질렀습니다. <강도는 내 집에서 물러가라, 강도는 우리 가족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 강도 초상화를 우리 집에서 철거하라.>하고 고함을 질렀다 봅시다. 그러면 강도초상화를 불태운 그 집 장남이 피해자입니까, 그 집을 불법 점령한 강도가 피해자입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섬마을 어촌의 항구가 있습니다. 바다에 생선도 많이 잡히고 산과 들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풍요로운 어촌 마을입니다. 또 땅 밑에는 지하자원이 묻혀 있어서 캐내기만 하면 어느 섬마을보다 부자 마을로 살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는 참으로 복 받은 민족입니다. 그때, 바다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해적선단이 섬마을 항구를 힘으로 점령하여 강제동맹을 맺고 <내가 너희 섬마을을 지켜주마>하고 군대의 전시작전권을 빼앗아 갑니다. 겉으로는 섬마을 촌장이 작전권을 갖다 바쳤다고 허풍을 칩니다. 그리고 항구를 이간질하여 싸움이 나도록 하고 그 싸움에 개입을 하여 항구를 북항구와 남항구로 나누어 버립니다. 그 후 북항구는 적색항구라며 출입을 막아버리고 남쪽항구는 신탁통치와 군인정부를 세워 대리 지배합니다.

 

남북 항구의 가족들은 그때부터 생이별을 당합니다. 그리고 대북, 대남심리전으로 남쪽항구의 백성들을 이간질하여 북을 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만약 북쪽 항구를 다녀오거나 북쪽형제들을 만났을 때는 식민지법을 만들어 감옥에 가두기도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합니다. 또 남쪽항구를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온갖 살상무기를 갖다놓고 살상병원균 실험까지 해댑니다. 항구 구석구석에 80여 곳의 해적선기지를 만들어서 남항구와 북항구의 침략전쟁연습을 해댑니다. 거기다가 연간 방위비 명분으로 직·간접적으로 5조원 이상 백성들의 피 같은 돈을 뜯어갑니다.

 

항구에는 일자리가 없는 비정규직 실업자가 천만 명이 넘습니다. 집 없는 백성이 인구의 절반이 넘습니다. 청년실업자들이 거리에 넘칩니다. 그런데 울며 겨자 먹기로 해적선단에 매년 천문학적 조공을 갖다 바칩니다. 70여 년의 세월동안 말입니다. 그래서 이러다간 우리민족 다 죽겠다 싶어서 남쪽항구의 대표와 북쪽항구의 대표가 만나서 <우리민족끼리> 함께 하자고 합의를 하고 남북철도 개설, 남북 왕래와 교류, 이산가족 상설면회장 개설과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도우자, 경계도 완화시키,자 북쪽 땅 지하자원도 힘을 합쳐 개발하자, 바닷길도 틔우자, 총칼도 내려놓고 군비도 줄이자, 하고 파격적인 약속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해적선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너희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누구 마음대로 합의하느냐하며 판판이 방해를 놓습니다. 소위 <한미워킹그룹>이라는 전대미문의 간섭기구를 만들어서 우리 민족끼리의 대화에 딴지를 걸고 아무것도 못하게 방해합니다. 2018년에는 남쪽항구에서 5.24대북제재조치를 해제하겠다고 발표를 하니까 해적선의 선장이 놀라운 간섭을 합니다.<너희들은 내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며 남쪽항구는 해적선의 식민 항구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이때 <식민지 정책><해적선장의 식민지 발언>에 분노를 느낀 남쪽항구 백성 몇명이 항구에 식민 지배탑으로 세워놓은 <항구의 여신상>에다 불을 지르며 저항합니다. <해적선단 물러가라>, <평화협정체결, 내정간섭중단>등의 구호를 외치며 쇳덩어리 돌덩어리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때 남북통합을 방해하고 온갖 내정간섭을 일삼는 해적선단이 유죄입니까, 방화를 수단으로 하여 <해적선단 물러가라>를 외친 남쪽항구의 백성들이 유죄입니까? 또 묻겠습니다. 총칼로 광주항쟁을 짓밟은 전두환 일파가 유죄입니까, 함께 총으로 저항한 광주시민이 유죄입니까? 또 묻겠습니다. 전쟁 주범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범죄자입니까, 윤봉길의사가 범죄자입니까? 전시작전권을 꽉 쥐고 평화로운 항구에 살상무기를 들이대며 위협을 일삼는 해적선단이 유죄입니까, 자주와 해방을 외친 남쪽항구의 백성들이 유죄입니까?

 

맥아더동상에 방화하여 <미군추방, 평화협정체결, 내정간섭중단>을 외친 백성들의 외침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백주대낮에 벌어지고 있는 <신식민예속동맹>을 빤히 바라보고도 항구의 백성들이 눈을 감은 체 살아야 하느냐, 저항하며 민족자존심을 세우고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은 적어도 8천만 우리 민족의 자주적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침묵하고 눈감고 산다면 훗날 우리 자손들이 <그때 할아버지는 무엇을 하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일제와 미제의 식민지배방법이 어떻게 다릅니까? 일제는 직접지배 정책을 썼고 미제는 간접지배정책을 썼을 뿐 뜯어먹고 수탈하는 방법은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미국의 신식민지정책이론가 체스트 폴은 <직접지배가 아니라 대리지배정책을 써라. 그러면 독립투쟁도 잠재우고 식민통치를 무한정 할수 있다>

 

오늘날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미국의 지배정책을 우리는 피를 토하며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리정권으로 충실해 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 뿌리를 거두어내지 못하고 그 영향력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남과 북 최 수반끼리 <우리민족끼리 결정하고 이행하겠다>라고 아무리 외쳐도 남쪽이 식민지배 당하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해적선단의 방해 행위에 침묵하며 굴종하고 사는 것이 맞습니까, 그들의 폭압에 저항하며 사는 것이 맞는 걸까요?

 

저는 맥아더동상 방화범이 맞습니다. 앞서 비유한 남쪽항구의 자유의 여신상에 방화한 백성입니다. 저는 경찰에서 법원에 오기까지 단 한 차례도 방화혐의를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경찰조사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불출석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구속영장 신청 사실이 각 방송국 메인 뉴스에 시시각각으로 보도되었어도 그 뉴스 듣고 도주하지 않았습니다. 도주는 범죄꾼이 하는 짓이지 확신범은 당당하기에 도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도주의 위험이 있다고 구속이 되었고 보석석방 청구에도 도주의 위험이 있다며 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주장한 사실은 맥아더동상에 대한 방화자이지 공원의 조경수 숲나무 방화범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맥아더동상은 맥아더 가족재산이고 조경수는 우리 시민의 재산이기 때문에 조경수에 불지를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검·경은 구속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고대환이가 발로 불을 끄려고 걷어찬 불꽃이 조경수 나뭇잎에 붙었다 유도 심문하여 나를 조경수 방화범으로 거짓 기록하였습니다. 저는 우리민족의 소유인 나무··풀잎사귀 하나까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며 이를 불태운 사실이 없습니다. 내 민족의 재산은 털끝만치도 다치게 할 의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람한 점 없는 날을 택했고 공공의 위험이 없도록 새벽시간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적 감정과 개인 이익을 위하여 방화치 않았으며 우리 민족의 공공성을 주장하며 방화하였습니다. 불은 저절로 꺼졌습니다. 검경과 법원의 불이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은 단 1%도 맞지 않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나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표출키 위한 방법으로 방화라는 수단을 선택한 것이며 <미국의 전쟁지향>, <지배지향>의 속성을 규탄하기 위한 메시지 전달을 하기 위한 목적 외에는 아무런 사심이 없었습니다. 공원관리자인 인천중구청은 그을린 부분과 잿가루를 청소한 것 외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비만 청구한다고 했으며 바로 그것이 시민재산 방화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경은 해방과 자주를 외친 백성을 조경수 방화범인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검경이 이 땅의 검·경입니까? 백성이 저항하면 그 나라의 지도자나 대통령에게 협상력이 높아지고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그리고 백성들이 침묵하면 제국에 소나 개처럼 끌려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내 민족의 자주와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맥아더 항전을 선택했을 뿐 개인 이익이나 조국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기 위함이 아닙니다. 맥아더 동상은 민족을 분단시키기 위한 <분단고착화>의 산물이며 남쪽 백성들을 우민화시키기 위한 <대남심리전술탑>으로 존재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깨달아야 합니다.

 

내게 왜 방화하였느냐 묻는다면 첫 번째도 <조국의 자주화와 해방>을 위하여 두 번째도 <조국의 자주화와 해방>을 위해서 행동했다고 답할 것입니다.

 

자국의 백성이 외치는 진실은 외면하고 자주와 해방을 부르짖는 백성을 무조건 잡아 가둔다고 해적선의 범죄는 결코 뎦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머지않은 장래 이 땅의 진실된 역사가 대답해줄 것입니다. 앞으로도 나는 내 민족의 자주와 해방을 위하여 나머지 목숨까지 바칠 것입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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