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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 다시 열린 민족공동행사-(2) 2019년 새해맞이 연대모임에 다녀와서-

작성자 양심수후원회 등록일 2019-02-24 조회수 143회 댓글수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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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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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 석방과 후원사업,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비전향장기수 송환운동에서 절대적 위치와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통일운동단체가 따로 있을 필요 없이 모두가 각기 다른 부문에서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가하지 않은 대표들은 금강산호텔 매점에서 각자 생각해 두었던 북녘동포들이 만들어낸 물품들을 구입하여 객실에 갖다 두었다. 11층 객실 동쪽 창 커튼을 제끼니 바로 11시 방향으로 수정봉이 보였다. 2008166.15한마음 통일산악회가 금강산 마지막 등반을 했던, 온 산이 수정으로 된 웅장한 봉우리였다.

 

오후 7시로 예정되었던 연회는 부문모임이 길어지면서 1시간 늦춰져 8시에 시작되었다. 금강산호텔 2층 식당이었다. 식당 남향 쪽에 주석단 식탁이 있고 그 앞에 세 줄로 8~10명씩 식탁이 이어져 이미 갖가지 음식과 술 종류 등이 놓여져 있었다. 나는 3탁에 배정돼 주석단과는 가까웠다. 3탁의 남측대표단은 김삼열, 조헌정, 조성우 등 6.15남측위 상임대표들과 최경환 민주평화당 국회의원, 권오헌 명예회장이 함께 했고 북측에서는 조선종교인협의회 소속 조선그리스도연맹 대표와 6.15북측위 박성일 사무부국장, 해외측에서는 6.15해외측 부위원장인 차상보 재중조선인총연합회 회장이 함께했다.

 

인사들을 나누고 술잔을 채우고 하는 사이 만찬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북측 강지영 조선종교인협의회 위원장이 북남선언 이행을 위해 잔을 들기를 권했고, 남측의 김희중 대주교, 해외측에서는 김광일 6.15해외측 부위원장(재대양주 대표)이 만찬사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강원도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군이 지역구인 황명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건배사를 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연회의 상차림은 푸짐했다. 팥소빵, 떡합성, 김치로부터 차례차례 나오는데 오리고기, 락화생찜튀기, 밥조개 쌀라드, 삼색나물, 록두지짐, 돼지고기 완자탕, 생선깨튀기, 소고기완자도마도즙찜, 송이버섯볶음, 완두콩밥, 닭고기버섯맑은국, 마지막으로 수박, 단설기, 온정차가 후식으로 나왔다. 천하명산 금강산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감동적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푸짐한 안주에 그 어찌 술맛이 안 나겠는가. 그러나 나는 완두콩밥을 닭고기버섯맑은국에 말아먹는 게 제일 맛있었다. 당연히 배추김치가 뒤따른다. 술로 대동강맥주와 조금 독한 소주가 나왔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소주 두 잔쯤 마셨다.

 

그런데 축배 제의가 끝나자마자 주석단에 있었던 손형근 6.15해외측 위원장이 나를 찾아왔다. 가까운 앞자리에 있으니 쉽게 알아 봤을 터였다. 반가웠다. 자연스럽게 서로 얼싸안았다. 첫마디가 건강은 어떠시냐였다. ‘이렇게 건강하게 금강산에도 왔다고 말했다.

 

손 위원장은 현재 재일 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의장도 맡고 있었다. 2년 전 곽동의 의장이 별세하신 뒤 고인이 맡았던 주요 직책을 다 맡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아직도 한통련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어 다른 한통련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고국방문이 허용되고 있으나 손 의장만은 불허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3해외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주선으로 그해 9월에 한가위 고국방문이 허용되어 일본과 유럽지역 민주인사들 34명이 40여년 만에 고국을 방문했다. 손 의장은 그때는 한통련 사무총장으로 입국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는 다시 불허 조치됐다. 2009년 인천공항까지 왔었으나 공안당국의 소환장을 받고 이를 거부하며 되돌아간 뒤 오늘 현재까지 입국이 불허되고 있다.

 

연회가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 자리를 옮겨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나는 주석단의 북측 김영대 민화협 위원장이자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을 찾아 인사를 나누었다. 앞서 문화회관 대표자회의가 끝난 뒤에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 밀린 이야기를 했었다. 강지영 조선 종교인협의회위원장, 박명철 6.15북측위원장, 양철식 6.15북측위 부위원장과도 만찬 인사를 나누었다. 이 같은 북측 인사들과의 만남은 북측인사가 내 곁으로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부문별 모임에 참가하지 못한 만큼 이 같은 만남을 통한 대화로 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가령, 판문점선언에서 합의된 민족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주의 문제해결이란 특별한 과제이기도 했다. 이러한 소통의 시간은 다음날 신계사 참관에서도 이어졌다.

 

다른 대표들은 몰라도 조순덕 민가협 상임대표와 장남수 유가협 회장의 자리를 미리알고 있었기에 그곳에 찾아간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쪽에서도 잘 알려진 박영희 6.15북측위 여성분과위원장이 함께하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박 위원장도 첫인사가 건강은 어떤지를 물었다. 많은 북측인사들의 인사말이 되고 있었다. 박 위원장은 2000년 조선로동당 창건 55돌 경축행사 때 처음 만난 이후 여러 번 뵈었던 분이다. 조순덕 회장님과 주석단의 여러분과 다시 인사를 다녔다. 남쪽에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상징적 인사임을 북측인사들도 알고 있었다.

 

새해맞이 연대모임 이틀째 행사는 새벽같이 시작된다. 해금강에서 해맞이를 하려면 호텔에서 6시에 떠나야 했다. 550분까지 버스에 탑승하라는 집행일꾼들의 공지대로 모두들 시간을 잘 지켰다. 해금강까지 약 40분이 걸린 것 같다. 아직 동쪽바다 위로 해가 솟아오르지는 않았고 새벽 어스름이 해금강의 바위와 바다와 그 모든 절경을 가리고 있었다. 저마다 사진 찍기에 급했다. 그리고 이윽고 동쪽바다위로 해가 솟는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졌다.

 

간략한 해맞이 행사가 진행되었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행스님의 ‘100년 전 시작된 3.1운동은 이제 종전선언과 남북통일로 이어져야 한다고 힘찬 말씀을 한다. 6.15북측위 문예분과 위원인 김송림 시인은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들 한눈에 굽어보며 아득히 물결쳐오는 천리수해를 날아넘어 해가 솟는다!”“8천만 겨레여, 민족대단결의 억센 힘으로 평화와 번영의 꿈 어서 이루고 우리 금강산에서 다시 만나자! 삼천리에 펼쳐질 통일해돋이 마중가자!”고 자작시를 낭송했다.

 

해맞이를 마치고 돌아온 남··해외 대표단은 아침식사를 하고 지역·농민·교육자들의 부분모임팀을 뺀 나머지 인원들이 버스로 신계사(神溪寺)로 떠난다. 주변에 쭉쭉 뻗어 자란 금강송의 밀림을 지나 신계사에 닿았다. 신계사는 31본산 중의 하나인 유점사(楡岾寺)의 말사로 519년 법흥왕 6년에 보운(普雲)조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신계사 주지 진각스님의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다 줄이고 큰 변을 두 번 당했는데 임진왜란 때와 조국해방전쟁 때 3층석탑(국보)만 남고 모두 불탔다고 한다. 다행히 1998년 남북불교계가 금강산 문화재 복원을 위한 합의서를 바탕으로 2003년 복원을 시작해 20071013일 일부 준공식을 갖게 되었다. 대웅보전을 비롯해 종각, 만세루 등 10여 채의 가람으로 복원되었다. 절 앞에는 신계천이 흐르고 그 멀리 남쪽에 집선봉 등 1,000~1,500m의 연봉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남북의 종교인들이 종교의 차이를 넘어 대법당에서 합장하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점심식사는 온정각 수정식당에서 했다. 지난밤 연회에서의 차림보다도 훨씬 더 다양하고 푸짐한 먹거리로 남측대표들의 식욕을 돋우었다. 떠날 시간이 되면서 모두가 아쉽기만 했다. 옛날같이 수천 명이 만물상으로 구룡연으로 수정봉으로 삼일포로 그리고 내금강까지 밟는 금강산관광 재개가 빨리 이뤄졌으면 싶었다. 보고 싶을 때 동포들을 언제나 만나 동포애의 정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전체 기념사진을 찍고 남행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소문만큼 북측이나 남측 출입국사무소의 짐 검사는 까다롭지 않았다. 금강산에 갈 때부터 술은 1병 이상 살 수 없다느니 하는 소문이 있어 우리 모두 안보리 제재결의를 어깁시다.”고 내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공개적으로 내가 술 4병을 샀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짐을 보니 몇 병이 아니라 박스로 사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아무 일 없이 세관검사를 마쳤다. 이렇게 남북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연대모임은 무사히 끝났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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