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양심수후원회
로그인
홈으로 | 사이트맵
후원회소식
후원회소식지
소식지보기
지난 소식지보기
Home > 후원회소식 > 소식지보기
소식지보기

[소식지 323호] 양원진 선생님 구순잔치 겸 출판기념회

작성자 양심수후원회 등록일 2018-11-08 조회수 54회 댓글수 0건

‘곡절 많은 한 생을 살아오며..’

자주통일 염원의 실천가 양원진 선생님 구순잔치 겸 출판기념회


사무국


 “감옥에서 나온 뒤 양지에서 음지로 옮겨 조용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양지로 나와 살아갈 것이며, 통일운동에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통일운동의 전사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2010년 신년 산행에서, 양심수후원회 유영호 기록)


‘통일운동의 전사, 신념의 화신’


5234ecfec310678d5fefdcc14afdf658_1541664354_9.jpg

양원진 선생님을 일컫는 여러 가지 말 중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단연코 ‘전사’라는 말이다. 신념의 화신으로, 자주 통일의 실천가로 꼿꼿하게 세웠던 허리가 이제는 구부정해 졌지만, 아직도 선생님은 전사의 모습 그대로다.


5234ecfec310678d5fefdcc14afdf658_1541664308_52.JPG

한 여름 뜨겁던 팔월의 청와대 분수대 앞, 폭염으로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했던 지난 여름의 기자회견장에서도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닦지도 않고 묵묵하게 지팡이 짚고 서 계시는 선생님은 전사의 모습 그대로다.


5234ecfec310678d5fefdcc14afdf658_1541664389_18.JPG
5234ecfec310678d5fefdcc14afdf658_1541664389_34.JPG
5234ecfec310678d5fefdcc14afdf658_1541664389_56.JPG
 

9월 8일 토요일 오후 4시 , 여름의 끝자락인 듯 눈부신 날 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에 있는 식당에 구순을 맞은 선생님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백 오십여명의 손님들이 오셨다. 내,외빈 소개와 간단한 축하공연도 하고, 출판경과 보고와 여러 어른들의 축하 말씀도 듣는 시간을 갖었다. 범민련 후원회원들은 악기연주와 함께, ‘백세 인생’노래를 개사하여 많은 이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6.15합창단원들도 멋진 화음으로 선생님의 생신을 축하해 주었다.


5234ecfec310678d5fefdcc14afdf658_1541664332_54.JPG

예상보다 훨씬 많이 찾아 주신 축하손님들 덕분에 더욱 풍성하게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곡절 많은 한 생을 살아오셨지만, 그래도 통일운동의 전사로 살아가시는 모습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다.

앞으로도 더 건강하시고, 신념의 고향에 가시어 뜻 깊은 상수연(上壽宴)을 맞이하시기를  바래본다.


 

양원진 선생의 약력


- 1929년 9월 8일 전남 무안군(현재 신안군으로 분리) 지도면에서 2녀 1남의 막내로 출생. 부친은 광주사범대 졸업 후 교사로 재직하다 부임 온 신여성과 일본으로 떠난다. 홀로 남겨진 모친은 삯바느질과 농사일을 하며 친척집에 맡겨 놓은 삼남매를 돌봐야 했다. 힘겨운 가족의 삶과 선친의 복잡한 여성편력을 지켜본 선생은 이후 독신 혁명가의 길을 고수한다. 여성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결벽에 가까운 자기방어기제였다. 

- 1942년 2월 사업상 일시 귀국한 부친을 따라 36시간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간다. 동성제2중학교와 소화국민학교 졸업. 

- 1945년 3월 일제 징용 동원 6개월 복무 후 해방. 팔로군 접촉 불발, 임정 등 우익 민족주의적인 환경에서 재북경한국인중학교 1년 수료. 

- 1946년 5월 귀국, 목포 문태중학교 입학. 1년 앞서 귀국한 선친은 무안군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복무 중이었다. 선생 역시 미군정의 가혹한 쌀 공출 반대시위, 삐라 살포 등을 조직한다. 

- 1947년 남로당 비밀당원 입당. 7월 27일 미소공동위원회 개최일 궐기대회 참가 도중 경찰서 앞에서 우익 테러를 당하고 죽음 직전에 가까스로 소생. 

- 1948년 2월 탄압을 피해 일가족이 군산으로 이사, 부친이 경영하는 <이목소주회사>를 통해 지리산 빨치산 연계 등 지하운동. 

- 1949년 이승만 정부의 징병제를 피해 서울 신흥대학(현 경희대 전신) 외국어학부 영어과 입학. 

- 1950년 전쟁 발발, 부친 학살. 

- 1953년 8월 평양 정치군관강습소 입학 

- 1954년 9월 제대, 고 문상봉 선생과 남포 815조선소 배속 

- 1955년 3월 당 대남정치사업 소환 

이전글 [소식지 323호] 일본손님 방문기
다음글 [소식지 323호] 2차 송환을 희망하는 선생님을 찾아뵙다

목록보기

양심수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