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후원회 2009.05.29 13:30 조회 수 : 3548
기행일정표입니다 | ||||||
글쓴이 : 행운아 | ||||||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608 | 점봉산 답사안내 [2] | 모야모 | 2009.07.06 | 4576 |
607 | 안병길 목사님 딸 샘 결혼식과 사모님 소식 | 수니 | 2009.06.21 | 4787 |
606 | 오감시롱 기행안내 [1] | 길소녀 | 2009.06.16 | 4649 |
605 | 이 대통령 [1] | 모야모 | 2009.06.11 | 4442 |
604 | 안병길목사님 따님 결혼식 안내 | 길소녀 | 2009.06.04 | 6922 |
603 | 새집에 들어온기분이네 ^(^ - 모야모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4464 |
602 | 세형이 결혼 축하 해주셔서 감사 - 비겐아침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8095 |
601 | 옴시롱감시롱 입방 추카추카 - 수니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4283 |
600 | 조순덕 상임의장 출소 환영 2009-04-08 글쓴이 : 서산댁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3666 |
» | 기행일정표입니다 [1]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3548 |
598 | 기행안내문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2467 |
597 | 답사 다녀올게요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2392 |
596 | 장연희선생님 둘째 아들 결혼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3098 |
595 | 권오헌 선생님 생신안내 2009-03-09 글쓴이 : 김길자 [1]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3631 |
594 | 총회^^너무 신나버렸네 [1]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2867 |
593 | 회장당선을 축하합니다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2660 |
592 | 총회 결과 보고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2778 |
591 | 2008옴시롱이 걸어온 길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3071 |
590 | 오감시롱 총회 안내 [1]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2838 |
589 | RE:운영자님께 | 양심수후원회 | 2009.05.29 | 2648 |
CLOSE
고령은 철의 왕국 대가야가 있던 곳으로 일본하고도 교류를 할 정도로 선진문물을 갖고 있던 나라였으나 연합형태였던 가야는 중앙집권국가로 가지 못하고 신라 진흥왕 때 신라에 귀속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문화까지 묻히지는 않잖아요.
고분군을 만나게 됩니다. 무덤떼이지요. 경주의 왕릉은 편편한 곳에 존재하지만 가야의 고분들은 능선을 따라 있는데 낮은 곳에 있을 수록 높은 분의 무덤이라고 하네요.
그냥 아이들 손잡고 소풍가기 참 좋은 곳이다, 이런 느낌이 들 정도로 아늑하고 푸른 하늘과 단짝이고 그런곳이더군요. 순장묘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왕릉전시관을 보면 어떨까, 약간 떨리기도 합니다. 하필 답사를 월요일날 가서 들리지 못했거든요.
개실마을의 김종직 고택에 들어서면 세월과 담쌓고 조선시대로 걸어들어간 듯 아늑하고 점잖고 그래요.
양전동 암각화 -선사시대의 문양들이 새겨져있는, 세월을 거슬로 올로가 뭔가 물어보면 곧 답을 할 것 같은 귀면이 정답게 맞아줄 것 같아요. 태양신을 모방한 동심원 무늬 등-잘 보고 와서 벽지 디자인할 때 쓰면 좋겠다 싶습니다.
해인사는 워낙 큰절이라 입에 올리기 어렵습니다. 국보급 문화재등이 너무 많아 자료집에 담기에도 힘듭니다. 수많은 암자들을 거느리고있는데 암자가 보통 절크기와 맞먹어요. 곳곳에 숨겨진 보물들과 대장경을 보관한 장경각 등 가보면 아실 겁니다. 거기서 한나절을 보낼 건데 참 좋아요. 부엌 살강 위에 비추던 햇살처럼 적당한 빛과 바람을 주는 장경각의 창살, 끝내줍니다.
일정을 다 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들릴 곳이 개경포입니다.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돼있던 대장경을 조선초기에 해인사로 옮길적에 서해, 남해, 낙동강을 거쳐 이 포구에서 내렸대요. 경상도일대 스님들이 이고지고 고갯길을 넘어 해인사까지 날랐다니 참 위대하지요. 강화도에 그대로 있었다면 왜구와 서양열강의 침략에 편치 못했을 거고 해인사로 옮겨서도 다른 전각들은 예닐곱 차례의 화마를 겪는데 장경각은 무사했다니.....뿐만아니라 한국전쟁 시기에도 인민군이 해인사에 있다며 폭격을 명했으나 어느 현명한 공군 중령이 명령을 따르지 않아 팔만대장경은 무사했다니 이런걸 두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있다고 하나 봅니다.
개경포구에 앉아 납작한 돌멩이 주워들고서 물수제비나 여러번 뜬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이번 기행은 가지런히 정리되지 않을까 합니다.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