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시롱 감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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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미실, 실버타운이 되다
글쓴이 : 김혜순
  시아버지 가게 앞으로 경안천 상류인 개천이 흐르는데 새벽녘에 한때 넘쳐서 노심초사 밤을 새우신 모양인데 며느리는 쿨쿨 잠만 자고 있었으니.....

자고 나니 강물이 넘칠 뻔하고 있네요. 다리는 다 삼켜버린 뒤고. 성난 황소마냥 흐르던 물살은 다리께 와서는 한바탕 재주를 넘고 흰 포말을 뿜으며 더욱 거세게 흘러갑니다. 손놓고 비만 줄어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린 참 작은 존재네요.
고새 도서관으로 내뺐던 이선생이 걱정이 됐나 들어오네요.
내일 진도에 가려 했는데....



^^^^^^^^^^^^^^^^^^^^^^^^^^^^^^^^^^^^^^^^^^^^^^^^^^^^^^^^
노란 주전자에 바닷물을 반쯤 채우고 산낙지 서너마리를 넣어 버스타고 서울로 외할머니 제사를 모시러 다니던 이모님이 계셨습니다. 바다를 막은 간척지에서 생산된 쌀을 당일날 빻아 온기가 있는 채로 젯상에 올린다며 가져오던, 이제 환갑을 갓 넘긴 이모님입니다.
"우리 둘중 하나 죽으면 언니는 몰라도 나는 혼자 못다니겄소."
농담처럼 주워담던 우리 이모.
정말로 혼자 제사 지내러 다니기가 무서웠나 봅니다.

초여름 산들바람이 부는 어느날, 이모부는 새신랑마냥 예쁘게 논두렁을 다듬고 이모는 그 파르스름한 논두렁에 띄엄띄엄 새색시마냥 콩 한줌씩을 심고서 맛나게 점심을 먹고나서 낮잠을 자다가 숨을 몰아쉬며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결혼하시고 바로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모는 갑자기 소녀가장이 되었습니다. 한참 사춘기 땐데 여동생과 남동생을 달고서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던 이모, 밤마실을 나갈 때면 동생들을 떼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이모. 막내이모와 외삼촌에게는 부모나 같은 존재였지요.
갑작스런 이모부의 암발생 소식에 맥을 놓아버리셨는지- 하얀 꽃상여를 먼저 타고 말았습니다. 이모가 타고 가는 마지막 가마는 이모의 삶만큼이나 무채색이었습니다.

막내 이모의
"언니 ~~, 언니~~"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너무나 처량했습니다.



덕환이 오빠는 광주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는, 올해 쉰여섯쯤 되는 우리 동네 사람입니다.
태풍이 지붕을 날려버릴 듯이 세차게 불던 7월 초순, 수업중에 가슴에 통증을 느낀 오빠는 조퇴를 하고 전남대 병원에 갔습니다.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통증이 계속되자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갔고 여러 날에 걸쳐 검사를 받은 결과 폐암으로 온몸에 전이가 된 상태라 수술을 해도 죽고 안해도 죽는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제 아무리 의사라지만 인간의 생사를 어찌 그리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으랴, 차마 제발로 걸어들어온 병원에서 죽어나가랴 싶었던 덕환이 이선생은 수술을 결정하고 가슴을 열었는데 그만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답니다. 그대로 닫고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덕환이 이선생에게는 평생 고향을 지킨 노모가 있습니다. 서울로 공부하러 간다며 내게 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찔러 넣어주시던 넉넉한 '아짐'입니다. 구성진 진도아리랑이며 옛날 이야기들을 구수하게 들려주시던 아짐. 밤마다 마을 공회당에서 흘러나오던 아짐의 노래는 이제 이제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덕환이 오빠 장례를 치루러 해남병원에서 잠시 퇴소한 경림네 아부지는 당뇨의 합병증으로 발가락이 썩어들어가는 병에 걸렸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아저씨는 1년 넘게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인자 갔다가 아부지 제사 때 올라요."
하며 인사를 하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경림네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혼자 되신 모양입니다. 체격이 큰 편인 할머니는 젊은 날에 혼자 되신 쓸쓸함을 키작고 왜소한 며느리에게 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점점 작아지고 며느리의 힘이 세지다 보니 그 시절을 잊으려 할머니는 며느리 몰래 늘 술을 마셨습니다.
동네 제일 아랫집인 우리집 샘가의 목욕탕엔 그 할머니가 밭에 나가면서 돌아오면서 홀짝홀짝 마시던 두홉짜리 소주병이 늘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빈병에 담긴 빗물마냥 늘 고만큼 담겨져 있던 술병이었지요. 엄마는 경림네 할머니가 불쌍하다며 집안으로 들어와 술을 마시게 했습니다.
할머니는 정확하게 덕환이 오빠 장례가 있던 다음날 딱 고만큼의 소주에 농약을 타서 마시고 온방을 쓸고 다니다 한많은 생을 마쳤습니다.

엄마는 올해 들어서만 네번의 장사를 치뤘습니다. 이러다가는 동네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나도 걱정이 되는데 동네에서 일을 치뤄야 하는 엄마는 어떠실까?

엄마는 장사를 치룬 뒤 하루에도 서너번 병원을 다녀야 할 정도로 고되게 앓았답니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칠순의 부모님은 단순한 안타까움을 넘어선 그 무엇이 있을 겁니다.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방학이면 이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부모님 곁으로 달려가는 행복한 여행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안타까운데....
사는 게 맘먹은대로 안 되네요.

젊은 나이라고 너무 혹사하지 마시고 모두들 건강하십시오.








2002-08-07 (13:35)
  • ?
    양심수후원회 2009.05.28 13:39
    고맙구나
    글쓴이 : 김혜순    ()   
      빗소리 들으며 언니 글을 읽어주었다니 고맙구나.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다가 저녁을 먹고서야 물구경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얼마나 세차게 빗줄기가 퍼붓는지 구경을 간다는 게 청승맞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지난번 기행 때 입었던 비옷을 챙겨입고 성재에게 난생 처음으로 장화라는 걸 신겨서 우산을 받쳐들고 구경을 나선다. 어색한지 로보트처럼 뚜벅뚜벅 걷는다.
    "비올 때 발 젖지 말라고 신는 신발이야. 길어서 장화라고 해."
    장호야, 장화야? 하며 잊어먹지 않으려고 계속 중얼거리는 모양새가 흥부집에서 화초장을 얻어가며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놀부같아 웃음이 번진다.

    집에서 보이던 다리는 성난 물줄기가 삼켜버렸고 강변에 심었던 고추며 옥수수, 참깨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호박이며 고구마는 어미 곁을 떠나 세찬 물살에 제 운명을 내맡겼다.
    이선생이 고구마 한개를 길러보자며 주워온다. 호박이 떠내려가길래 신기한 듯 소릴 질렀더니 몸을 굽혀서 건져보니 줄기에 용케도 달려있는 거였다.

    아이가, 엄청 비가 온다고 비가 더 굵게 온다고 계속 비만 온다고 물살이 무섭다고 그냥 얘기하는데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느낀다.

    좀더 아래고 내려가니 징검다리를 없애고 세운 쇠다리가 물속에 반쯤을 잠기고 반은 하늘을 향해 있다, 무슨 조각품처럼. 그런데 흉물스럽다.

    비가 오면 왜 밀가루 음식이 생각날까? 부침개도 해서 이웃들과 나눠먹었는데도 속이 허하다. 빵집에서 허전한 진열장에서 식빵을 하나 챙겨들었다.

    <네게 메일을 보냈는데 읽어보고 연락바란다.
    오감시롱 대변인 수강이의 예쁜 목소리가 그립고나....>
    2002-08-0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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