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시롱 감시롱

남해길 길 동무를 기다리며 2002-05-28 글쓴이 : 으뜸

양심수후원회 2009.05.28 12:43 조회 수 : 2238

남해길 길 동무를 기다리며
글쓴이 : 으뜸    
  남해엽서

불륜을 꿈꾸는 나의 시는
지금
남해의 안개 속에 잠겨 있다.

바다는 잔잔하다.

안개 속으로
작은 통통배 하나가 다가온다.

"고기 많이 잡았소?"
"말 마쇼.고기가 씨가 말랐소."

깡마르고 붉게 그을은 얼굴의
사내가 큰 소리로 대답을 한다.
그의 소리가 안개에 젖는다.

한참동안
그가 그물을 내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나는 다시 천천히 걸어
바닷가의 우체국 쪽으로 간다.

그리고 엽서를 한 장 사서
그 텅 빈 여백을 바라본다.

무엇을 쓸까

텅 빈 여백은
텅 빈 바다처럼 막막하다.

'남해엔 지금
백일홍이 한창 붉게 피었다오.'
이윽고 나는 그렇게 쓴다.

다음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아 한참
창 밖 안개에 젖은 바다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내 마음속으로 비행기가
한 대 날아가고 있소. 까마득히 먼 하늘에......'
라고 쓴다.

왜 하필이면 비행기가 떠올랐을까.
지워버릴까
아니면 새 엽서에다 다시 쓸까
하다가, 내버려두고 다시 그 뒤에 쓴다.

'당신에게 당신의 이름이 있듯
나에게는 나의 이름이 있소. 이제
나는 나의 이름을 갖고 싶소.'

이렇게 써놓고
잠시 다시 눈을 들어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안개가 깔린 바다에서는
사람들의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온다.

드디어 나는 마지막으로
아주 상투적이고 진부하면서
또한 언제나 진실이 배어 있는
작별의 인사말을 쓴다.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있길......'

아직 여백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니는 그 뒤에 날짜와 이름자의 끝을 쓰고
천천히 우체통에다 넣는다.

그리고 다시
남해바다 부서진 시멘트길을 따라 걸어간다.
아직 바다는
아침 안개에 젖어 있다.
어디에도 붉은 백일홍은 보이지 않는다.

한숨처럼 뒤척이는 파도소리뿐.
안개를 헤치고 불어오는 비릿한 바람냄새뿐.

김영현시인의 남해엽서

'이성복시인의 남해금산을 찾다 대신 남해엽서로 띄움니다.
이번주 토,일(6월1,2일) 답사가 예정됐는데 길 동무가 나타나지 않아 힘듭니다. 도와주세요. 간절히 바랍니다. 제 남편 신현부를 데려가면 좋으데 심한 감기에 몸져 누웠습니다. 눈 시러울 만큼 어여뿐 바다에 풍덩 빠질 사람 꼭 연락주세요.
여ㅡㅡㅡ러ㅡㅡㅡ분 힘들죠? 아푼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가요 남해의 깊고 푸른 바다에...
'


2002-05-2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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