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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백혈병 피해유족 정애정 기고문<노정협>

삼성일반노조 2013.02.06 12:53 조회 수 : 1130

 
“삼성과 싸우면서 정작 변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 삼성백혈병 피해자 유족의 피맺힌 이야기


삼성 백혈병 피해 유족 정애정




안녕하세요. 저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 유족 故 황민웅의 아내 정애정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이야기를 할라치면 남편과의 4년도 채우지 못한 짧은 결혼생활을 쓰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남편의 9개월 동안의 병상생활을 생각하는 것은 남편을 떠나보낸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저에겐 깊은 아픔을 줍니다.

남편의 병명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었습니다. 급성인데다가 백혈병 중에서도 성인이 걸리기 힘든 희귀 백혈병이어서 치료하기도 힘들고, 골수이식을 하더라도 재발률 또한 높은 독한 병이었습니다.

남편의 백혈병 진단 후 일주일 뒤 둘째아이 임신을 알았습니다.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남편의 병색은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합병증까지 가세를 해 남편과 저에겐 하루가 일 년 같은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출산을 하고 몸조리하고 있는데 저 대신 병원에 계셨던 어머니가 전화를 해옵니다.

“애~ 정~ 아 ~~ 빨~리 와~야~겠~다~!”

떨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만으로 울면서 “네~!” 하고 맨발로 허둥지둥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남편 나이 32세... 그렇게 남편은 잠깐 우리 곁에 머물다 아주 멀리 떠났습니다.

남편이 사망한지 2년 쯤 돼서 남편이 걸린 백혈병이 반도체에서 일하다 걸렸을 수도 있다! 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확히 알 수 없는 분노와 아픔과 서러움과 두려움까지 섞인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 밖으로 나와 삼성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나 혼자 어떻게 뭘 하지? 많은 고민을 할 새도 없이 피해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서로 슬픈 얼굴에 시선은 아래로 향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의 비통한 사연들

속초 여상을 나와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 입사했던 故황유미양은 택시운전을 하시는 아버지의 힘을 덜어 드리겠다고 삼성반도체에 입사해서 급성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손녀의 사망소식을 듣고 삼성에 입사하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유미씨 할머니가 충격 속에 돌아가시고, 황유미양 어머니는 우울증치료와 정신치료로 지금도 많이 힘들어 하고 계십니다.

故이숙영님은 故황유미양과 함께 2인1조로 일했던 사수였습니다. 황유미양이 신입사원으로 배치 받기 전에 이숙영님과 함께 일했던 전 여성노동자도 유산을 해서 퇴사를 했다고 황유미양의 아버님 황상기님은 말하십니다. 故 이숙영님은 돌도 안 된 젖먹이 아들을 놓고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하셨습니다.

뇌종양 판정 후 언어장애와 시력장애로 장애1급이 되어 살아가는 한혜경님이 있습니다. 한혜경님 또한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 후 엄마와 남동생과 살면서 어려운 가정에 힘이 되고자 삼성반도체기흥공장 LCD사업부에 입사했습니다. 한혜경님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휴무 때 집에 와서는 피곤하다며 잠만 자다 가기 바빴고, 생리불순이 심했다고 합니다.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지기 전에 퇴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온 후에도 점점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갔더니 종양이 대략 7~8년은 됐을 거라는 의사선생님의 말과 함께 위험한 수위의 뇌종양 진단을 받았습니다.

10년 넘게 남의 피로 연명하면서 살아야 하는 악성재생불량성 빈혈의 진단을 받은 유명화님은 삼성반도체 온양사업장에 입사했습니다. 몸의 컨디션에 따라 한 달에 1~3번은 수혈을 받으러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옵니다. 혹 제때 수혈을 받지 못하면 온몸의 핏줄이 터져서 겉으로 보기엔 온몸이 피멍이 든 것처럼 울긋불긋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점점 병이 악화되어 혼자서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힘들어 아버님의 덜컹거리는 용달차를 타고 이동을 하며 수혈과 입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뇌암(교모세포종) 진단을 받고 사망하신 故 이윤정님은 삼성반도체 온양사업장에 입사했습니다. 싸움을 시작하면서 치료과정부터 보아왔던 피해자여서 더욱 많은 생각이 나게 하는 피해자입니다. 독한 항암치료와 약물치료 때문에 몸이 많이 부어 있긴 했지만 부축을 받아 거동도 하고 음식도 먹을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1년도 안돼서 식물인간처럼 침상에 누워만 있다가 몇 개월 후 사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직도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어린 두 아이를 남겨놓고 그렇게 떠났고, 젊은 남편은 하염없이 시름에 젖어 있습니다.

싸움을 시작한지 5년여 만에, 재생불량성빈혈과 유방암으로 사망한 뒤에야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승인을 받은 여성피해자 두 분도 있습니다. 삼성SDI 협력사 노동자 박형집 아버님의 외아들 故박진혁군은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셨는데, 사망한지 3년이 넘어 산재신청 기회조차 소멸했습니다.

입사한지 몇 개월 만에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 후 13년 동안 수혈 받아 오면서 힘들게 살아오다가 결국 2012년 6월에 사망한 고향후배이자 학교후배인 故 윤슬기양도 있습니다.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취급받는 병에 걸려 고액의 치료비에 허덕여 가며 단체 사람들의 도움으로 치료받고 계신 이소정님, 불행 중 다행으로 급성백혈병과 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고도 치료가 잘되어 저와 같이 2심을 함께 하고 있는 김옥이님과 송창호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5라인 근무당시 함께 일했던 설비엔지니어 이윤성님은 루게릭병에 걸려 하루하루 다르게 몸이 굳어가서 아내의 도움 없이 생활을 할 수 없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을 그저 눈으로만 지켜보아야 합니다.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 수가 160여명에 달하고 사망하신 분들만 하더라도 60여명에 달합니다. 스스로 억울하다 제보한 수만 이럴진대 정부가 나서고 삼성이 나서서 철저하게 조사한다면 그 피해자 수가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는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삼성은 개인질병으로 우기고 있지만 분명 전염병도 유전성도 선천성도 아닌 백혈병과 희귀암의 발병원인이 반도체 공장안에 있을 것입니다.



삼성과 정부를 향해 싸우기 시작하다!

삼성과 정부가 말하고 조사해서 밝혀내야 할 것들을 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밝혀내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피해자들은 분노하며 삼성과 정부를 향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삼성은

-삼성반도체 백혈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하라!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라!
-죽음의 공장 가동을 멈추어라!

정부는
-삼성직업병 피해조사를 실시하라!
-무노조 사업장 안전관리는 정부가 직접 관리·감독하라!
-잘못되어 있는 산재법을 개정하라!
-살인마 이건희와 살인기업 삼성을 처벌하라!

피해 가족들은 생계를 하루하루 접고, 어린 아이들은 친정에 맡겨 가며 남편· 아내· 아들· 딸 사진이 있는 피켓 하나씩 들고 참 많이도 싸돌아 다녔습니다.

삼성 반도체 기흥·온양공장 ▪ 삼성전자 본관 ▪ 산업안전공단 ▪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 및 본사 ▪ 노동부 ▪ 국회 ▪ 삼성 전 계열사 순회 투쟁. 투쟁이 있는 곳 어디든 불러주시면 달려가서 발언하고 연대하면서 삼성반도체 백혈병이야기를 알려 나갔습니다.

삼성과 정부가 변하라고 열심히 싸웠는데 정작 변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듭니다.


19살부터 31세까지 삼성에서 일한 탓에 더욱 삼성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을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저였는데 지금은 삼성 이건희도, 가슴에 금배지를 단 나라님들도, 정복을 차려 입은 경찰도 무서워하지 않는 간 큰 ‘아줌마’가 되어 있습니다.

피켓을 들고 길거리에서 1인시위하는 것도, 찬 바닥에 앉아 집회에 참가하는 것도 이제는 창피하지 않습니다. 삼성경비와 몸싸움을 하고, 쌍욕을 듣고, 경찰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연이은 삼성 측의 고소남발로 경찰서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쯤은 거뜬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현재 1년 반 동안 진행했던 1심 행정소송에서 故 황유미님과 故 이숙영님은 지속적인 유해물질 노출로 보인다고 승소판결이 난 반면, 남편(故황민웅)은 2008년에 시작한 근로복지공단 심사와 재심사에서 모두 산업재해 불인정을 받았습니다. 지속적인 유해물질노출로 보이지 않는다가 1심 패소판결문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1년 반이 넘어가는 2심결과가 1월 31일 속행 뒤, 큰 이변이 없는 한 며칠 후에 판결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지난 2012년 2월 노동부 역학조사 결과 ‘가공라인 (기흥공장)과 조립라인(온양공장)에서 부산물에서 벤젠을 포함한 유해물질이 검출 되었다’라고 보고한 바가 있고, 이어서 3월에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린 피해자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승인을 받은 뒤 11월에는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퇴직 후 유방암에 걸린 피해자가 유해물질노출과 교대근무가 더해져 발병했을 거라는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인정을 받은 상태입니다.

상식적으로 모든 상황들을 보아도 남편에게도 분명 승소 판결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난 숱한 날들을 비상식과 마주하며 싸워온 터라 결과가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굳게 다집니다.

남편의 재판 결과가 좋으면 앞으로 삼성과의 투쟁에서 힘이 되어 좋고, 혹여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더욱 힘찬 분노로 악에 받쳐 싸우는데 힘이 될 거라고 제 자신을 꾹~꾹 눌러 단단하게 만듭니다.

반세기가 넘어가는 삼성 역사에서 노동자 죽이기, 노동자 탄압하기, 무노조 경영을 위해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을 1, 2년 싸워서 바꾸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나는 단단해지고, 저들은 약해진다는 것을 오래 싸우면서 느꼈습니다. 그런 희망으로 저는 내일도 ‘백혈병 산업재해 인정' 이라고 쓰인 깃발 하나 들고 철탑농성 중에 있는 동지들을 만나러 갑니다.

여러분들도 희망찬 새해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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