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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세상을 위해 애쓰시는 민가협 여러분들께


지난 12월 31일. 거의 정확히 20년만에 만끽해 보는 내나라내땅의 공기는 냉혹하리만치 시리도록 차가웠지만 그래도 살가운 포만감으로 받아 안았습니다.


그리웠던 내나라내땅의 하늘 아래였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옥방 안, 20여년전 이맘때에도 저는 옥방신세를 졌었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의 자유인으로 들풀하나 되어 길신좆아 노닐다가 인민군 종군기자 출신 이인모 선생을 만났고, 단 한 발자욱의 운신도 불가능한 선생의 손발역할을 하다가 그 인연으로 이곳 식구통 신세를 진 적이 있었지요.


미소의 대리전적 성격이 강했던 동족상잔의 비극 6.25 때 한 살백이 딸과 처, 노모를 두고 종군기자로 전장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34년의 옥살이를 했던 노인. 그 후유증으로 실어증은 물론 손발을 완전히 못쓰게 된 가련한 노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었지요. 당시 선생은 북녘땅 고향에 살고 있는 딸과 처, 손주들의 얼굴을 생전에 한 번 보고싶다는 마지막 소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해서 그 소망을 외면하지 못하고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있는 신라호텔에 ‘고향사람들에게 손이라도 한 번 흔들고 싶다’는 선생을 직접 데려다 주었고 그 일로 이곳 서울구치소에 갇히게 되었지요.


조금 반골기질도 있었고 바람따라 노니는 자유인에게 그것은 사상과 이념 이전의 문제인 게지요. 어쨌거나 제가 담벼락 안의 까막까치들과 소일하고 있을 때 이인모선생은 판문점 분단의 선을 넘어 그리운 가족품으로 돌아갔고 저는 만기 출소 후 다시 모든 걸 내려놓고 훌훌 땅끝동네 아르헨티나로 길신들린 나그네 되어 떠나갔습니다.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직전 작별인사를 하러 민가협사무실에 들렀을 때 당시 회장이셨던 안옥희선생의 카랑카랑하지만 자상한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조선생, 아르헨티나에 가시거든 아르헨티나 5월어머니회 어머니들게 안부 전해 주세요. 객지에서 부디 몸 조심하시구요.” 아르헨티나 5월 어머니들을 만나러 꼰그레소광장을 헤매고 군부독재시절 수장된 원혼들과 대화하기 위해 띠그래강의 거미줄수로를 주유하며 아르헨티나에 거의 정착할 무렵, ‘죽기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는 평양에서 온 이인모 노인의 마지막 소망이 깃든 엽서는 길신들린 자유인을 대동강변으로 이끌었습니다.


벌써 거의 20년전의 일이 되었네요. 어쨌거나 내나라내땅의 반쪽에로의 ‘허가받지 않은 여행’은 팔자에도 없는 3년간의 망명수용소 생활로 이어졌고 나그네 되어 세상의 주변부를 떠돌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31일. 모든 것 내려놓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톺아올라 11시간의 여정 끝에 20년만에 내나라내땅에 돌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동안 책도 보내주시고 이것저것 배려해주셔서... 지난 20여년간 국제나그네 되어 떠돌던 몸인지라 국내사정에 많이 어둡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지도편달 바랍니다. 참고로 들풀하나 되어 살아온 저의 지난 생활의 단편들이 궁금하시면 오마이뉴스의 ‘국제나그네의 독일아리랑’을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3.4.8

청계산자락에서 들풀하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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