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시롱 감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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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저녁을 먹고...
글쓴이 : 버금   
  다들 안녕하셔요?
오늘은 좀 많이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네요.
두툼한 담요같은 것으로 다리를 덮고 긴 휴식을 취하고 싶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제가 몇년 가뭄에도 쌀밥을 먹고 산다던 방앗간집 딸이지 않습니까? 그 방앗간 때문에 제 유년이 참 풍요로웠습니다.(참 그때는 방아찧는다는 말은 했지만 방앗간이라 불리지 않고 공장집이라 불렀어요. 그래서 제 별명이 공장집 막내딸이잖아요.)
특히 숨박꼭질과 소꿉장난을 할 때가 가장 재밌었어요. 우선 숨을 데가 많잖아요. 동그란 추 같은 것이 오르내리며 고추를 빻던 기계며 떡가루를 빻으면 앞쪽으로는 가루가 나오지만 뒤쪽으로는 하얀 천처럼 떡가루가 뭉쳐서 주름을 만들며 나오는데 그 뒤에 숨으면 아무도 찾지를 못했지요.
가장 신나는 장소는 밀가루 빻는 기계 아래로 밀가루를 받는 기다란 관모양의 상자가 있었는데 뚜껑을 닫을 수 있어 안성맞춤이었지요. 거기 한번 들어갔다 나오는 날이면 밀가루 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아이들을 좇아다니며 신나는 놀이가 이어졌지요.
지하로 뚫린 곳에 보리나 나락을 넣으면 위로 오르고 아래로 내리며 보리와 쌀이 나오는 과정은 너무나 신기한 마술이었지요. 쌀이 되어 마지막 나오는 기계 끝부분에 작은 서랍같은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항상 겨울 숲속에 숨겨져 있는 도토리마냥 쌀이 조금씩 남아 있었어요. 그 쌀을 달걀 껍질이나 노루모 깡통에 담아 밥을 지어먹으면 얼마나 곱슬하고 고소하였던가요!!!

방앗간이 이렇듯 푸르른 유년의 추억을 만들어주었다면 공장은 내게 늘 불안의 그림자였습니다. 통통거리며 공장이 돌아가는 동안은 우리에게도 휴식이 아니었습니다. 내 가슴처럼 콩콩거리던 공장의 기계소리가 멈추고 어둠속에 정적이 내리면 아버지는 새마을 모자를 벗어 마루 위에 놓으시며 긴 한숨을 내쉬었지요. 모자 위에 켜켜이 쌓인 먼지가 떨궈질 때까지 우리에게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소원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해 있을 때 밥먹는 거였어요. 아버지의 일이 끝나지 않아도, 공장이 쌩쌩 돌아가도 아무런 걱정없이 밥먹을 수 있다면....나는 꼭 6시만 되면 퇴근하고 식구들이 오손도손 밥먹는 그런 곳으로 시집가야지.....

셋째 언니가 덜컥 맞춰버린 오바값을 타러 통통거리는 공장 안으로 들어갈 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었구요.

오늘은 왜 하필 이런 이야기가 쓰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쓰고 달던 추억을 되씹어 뭘 하겠다는건지요. 그런데 쓰는 동안 저는 위로받고 있었네요. 자가치료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갑고 투명한 겨울이 왔습니다.
다들 따뜻하게 겨울 맞으시고 쓰잘데 없는 얘기라도 이렇게 쏟아 보세요.
움직이는 컴퓨터를 산 인철이 형의 멋진 답을 기다리며 용인댁이 씁니다.
2002-11-2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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