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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 전사 안재구 선생님이 살아오신 길

                                                   권오헌 (사)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1.jpg



안녕하십니까.

오늘밤 남민전 전사 고 안재구 선생님의 마지막 가시는 영결 추모자리에 함께하신 통일원로를 비롯한 사회 각계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자리를 마련 애써주신 유족들과 장례위원회 집행일꾼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모형제이자 스승이고 동지였던 선생님을 잃으신 유족들께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선생님의 90에 가까운 생애는 자료에 있는 바와 같이 많은 분량만큼 모든 이들의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태어나 별세하실 때까지 이 땅은 일제 식민지지배와 새로운 침략 외세, 그로 인한 분단 시대였습니다. 이 기간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는 조국광복과 민족해방이었으며 그것은 자주통일로 완성된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조건이 선생님의 생애를 결정하는 기본축이었다면 선생님의 정의, 진실추구 의지는 실천 활동의 필수 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의 살아오신 길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그 특성을 알아보려 합니다. 바로 천재적 기질과 왕성한 학문추구 열정이 최고학부 졸업과 대학교수, 이학박사 특히 세계적 수학자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러한 지식과 교양을 숱한 서술을 통해 또다시 사회에 환원시키셨습니다.

또 다른 생애는 조부이신 항일독립투사 우정 안병희 선생님의 영향을 받으시어 중학 1년 약관의 나이에 노동절 집회 등 사회참여를 비롯 2.7구국투쟁, 당과 농민조직원으로 활동하면서 수배, 퇴학, 항거, 구속, 석방을 반복하는 당시 해방공간에서 자주통일 노선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투쟁력을 기본으로 경북대를 중심으로 한일굴욕 외교반대, 삼선개헌반대, 교련반대투쟁 등에서 고 이재문 동지와 여정남 동지 등과 함께 대학교수직에 있으면서도 현실참여에 발벗고 나섰습니다. 이러한 투쟁은 결국 대학교수 재임용에서 탈락되는 핍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함께했던 제자이자 동지인 여정남 열사가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 그 배후조직이라며 이른바 인민혁명당재건위 사건과 연루시키는 조작사건으로 사법살인 당하는 것을 지켜보셔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일 제국주의를 배격하고 그 예속정권인 박정희 유신팟쇼체제 타도를 목적으로 결성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에 가입(769), 중앙위원으로 교양.선전선동부책으로, 통일전선부책으로, 그리고 반유신 삐라살포 등 수많은 현장투쟁을 하시다가 1979년 남민전 조직노출로 검거되어 1심에서 사형언도를 받으셨습니다. 이때 수백 명의 세계수학자들의 항의와 석방촉구로 2,3심에서 무기를 확정, 198812월 가석방되셨습니다.

 

이후에도 이른바 구국전위사건으로 무기형을 받으시고 5년 넘게 옥고를 치르시다가 19998.15광복절에 형집행정지로 출소하셨으며 2013년에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되어 집행유예를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투쟁과 옥고는 이름은 달라도 자주통일이라는 선생님의 평생염원을 실천하는 과정의 고난이셨습니다.

 

특히 남민전 투쟁은 국회와 정당이 강제해산되고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거수기로 뽑는 그리고 언론, 출판, 집회, 시위가 부정된 위수령, 긴급조치시대의 목숨 건 싸움이었습니다. 이러한 반제 민족자주와 반파쇼 민주화 투쟁은 자주통일로 가는 민족적 과제 이행으로서 그 정당성은 분단적폐세력과 공안논리에 관계없이 역사와 정의의 법정에서는 인정받을 터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같은 처절하고 치열한 투쟁의 남민전 전사로서 언제나 자긍심을 지니고 한생을 보내셨습니다.

 

-한 사례

선생님께서 운명의 마지막 어느 순간, 머릿속에 입력되었던 남민전 전사의 조직보위 수단의 한 장면을 따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따님조차 알아보시지 못한 상태에서 종이 한 장을 주시며 이 종이를 말아서 입에 삼키시요! 그래야 조직을 지킬 수 있다!”라고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정세는 매우 엄중합니다. 남민전이 외쳤던 반제 민족자주 과제와 외세공조의 예속성은 아직도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알량한 수량 비교로 체제대결이 끝냈다면서도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15만 평양시민에게 외쳤던 5천년을 함께 살았던 그 시대로 돌아가자던 바로 자주의 원칙과 자결의 원칙합의를 깨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세계는 또다른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모든 인류의평등성이 부각되었습니다. 사람의 피부색깔이나 성별, 나이, 문화형태, 신앙의 차이없이 그리고 제국주의 패권주의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도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대립뿐 아니라 제국주의 연합집단 사이에도 자국가 이익 우선을 놓고 다투고 있습니다.

 

이러한때 우리는 다시 침략외세를 청산하고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 정신으로 우리 민족끼리의 평화와 번영, 통일시대를 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의 평생염원이었고 그 민족적 과제는 이제 남은 이들이 해낼 것입니다.

모든 어려웠던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히 잠드시기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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