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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6.15봉우리에 남겨진 이름”

[산행기] 6.15산악회, ‘마지막 소년 빨치산, 비전향장기수 김영승 선생님과 함께’ 등반

 

김래곤 / 6.15산악회 총무

 

e0c3cee638ab1966b12fedd5631f1c82.jpg백운산 상봉에서 한미합동군사연습을 규탄하는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제공-6.15산악회]

 


6.15산악회(회장 권오헌)가 창립 16주년을 맞이하여 20일 광양 백운산(1,222m)에서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과 함께 빨치산 유격전적지 등을 답사하며 기념등반을 하였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서 중한치마을에서 한재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회원들을 바래고서, 나머지 회원들을 태우고 갈 트럭을 기다리며 버스 안에서 대기하였다.

아버님이 빨치산이었던 광양에 거주하는 배영일 선생이 새벽 4시 50분경 트럭을 끌고 와서 우리를 태우고 올라가는데 중간중간에 회원들이 트럭을 기다리며 쉬고 있었다.

그들을 함께 태우고 달리다 보니, 먼저 걸어서 출발하였던 선두를 앞지르고 한재에 도착하여 잠시 여정을 풀었다. 곧이어 선두가 도착하였고, ‘소년 빨치산’ 김영승 선생님을 비롯한 김영식 선생님, 양희철 선생님, 박희성 선생님 등 50여명이 넘는 인원이 한재에 모였다.

비전향장기수 양희철 선생님이 한재 추모제에서 통일애국열사들에 대한 예의를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비전향장기수 양희철 선생님이 한재 추모제에서 통일애국열사들에 대한 예의를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우리는 먼저 이곳에 잠들어 계시는 정운창 선생님을 비롯한 손영심 선생님, 정운모 선생님 등 통일애국열사들을 위하여 제수를 차리고, 한도숙 전 전농의장의 사회로 비전향장기수 양희철 선생님께서 대표로 이분들에 대한 예의를 드렸다.

회원들은 추도사를 통해 “통일애국투사들은 설한풍 몰아치는 모진 추위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삶과 죽음의 언덕을 수시로 드나들면서도 인정이나 친분보다는 사상과 신념을 앞세우며 격렬하게 싸워나갔다”면서 “미국의 식민지통치체제를 결사적으로 반대하여 자신의 청춘도 생명도 사랑도 오직 민중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조국통일을 위해 온 넋과 육신을 깡그리 다 바쳤던 것이다”고 기렸다.

계속해서 추도사는 “통일애국열사들의 불굴의 신념과 투쟁의지는 오늘 미국의 전쟁책동에 맞서 단호히 일떠선 우리 민중의 단합된 투쟁을 힘있게 추동하고 있다”면서 “통일애국열사들이시여! 이제 남은 과제는 저희들에게 맡겨 주시고, 편안한 안식을 찾으시어 조국통일의 날에 마음과 마음을 담아 삼가 영생하시기를 기원드린다”는 결의를 밝혔다.

김재선 6.15산악회 총대장이 대표로 통일애국열사 등에 대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김재선 6.15산악회 총대장이 대표로 통일애국열사 등에 대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비전향장기수 김영식, 양희철, 박희성 선생님은 “선한 이들의 뜻 하나로 뭉쳐라. 축출미제! 조국통일! 한재에 넘친다. 푸르른 산과 하늘에 메아리친다. 한재여!”라며 조국통일투쟁에 대한 신념과 결연한 의지를 드높여 주셨다.

박동기 남녘현대사연구소장(왼쪽)이 추모제에서 해설강의를 해주었고, ‘산 오락회’ 주인공 김강곤 님이 손풍금으로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박동기 남녘현대사연구소장(왼쪽)이 추모제에서 해설강의를 해주었고, ‘산 오락회’ 주인공 김강곤 님이 손풍금으로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불원천리 새벽에 광주에서 출발하여 기꺼이 산행에 동참해 주신 박동기 남녘현대사연구소장도 백운산에 잠든 통일애국열사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그 증명을 강의해 주었다.

또한 ‘산 오락회’ 주인공 김강곤 님은 손풍금으로 빨치산의 노래를 연주해 주었으며, 김영승 선생님은 손풍금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회원들은 추모제를 끝내고 산행에 앞서 ‘6.15산악회 창립기념 백운산 산행’ 펼침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제공-6.15산악회]
회원들은 추모제를 끝내고 산행에 앞서 ‘6.15산악회 창립기념 백운산 산행’ 펼침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제공-6.15산악회]

 


회원들은 추모제를 끝내고 산행에 앞서 ‘6.15산악회 창립기념 백운산 산행’ 펼침막 앞에서 “역대최대 핵전쟁연습 을지프리덤쉴드 중단하라!, 반노동,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윤석열 정권 퇴진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몇몇 선생님들과 일부 회원들은 한재에 남아서 쉬기로 하고 전체 대오는 백운산 6.15봉(김선우 봉우리)과 신선대, 상봉을 향해 등반을 시작하였다.

가파른 등산길을 어느 정도 오르니 능선이 보였는데, 이 길부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습도가 조금 높았고 지피식물들과 미끄러움을 조심하면 어렵지 않았다.

김영승 선생님께서 6.15봉(김선우 봉우리)의 ‘김선우 선생 옛묘’라고 쓰인 표지판 앞에서 김선우 사령관의 최후에 대한 말씀을 해주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김영승 선생님께서 6.15봉(김선우 봉우리)의 ‘김선우 선생 옛묘’라고 쓰인 표지판 앞에서 김선우 사령관의 최후에 대한 말씀을 해주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김영승 선생님께서는 등반 도중 숨을 고르실 때마다, 회원들에게 치열했던 지난날 빨치산투쟁에 얽힌 여러 가지 사실들과 전투 이야기들을 해주셨으며, 6.15봉(김선우 봉우리)의 ‘김선우 선생 옛묘’라고 쓰인 표지판 앞에서 김선우 사령관의 최후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다.

김선우 사령관은 바로 우리가 등반하여 온 길(현재 금천계곡 쪽), 백운산 서골에서 원능선 방향으로 넘어오다 토벌대에 의해 포위되었다. 그날이 1954년 4월 5일, 김선우 사령관은 허벅지에 총상을 당한 상태에서 그 자리에서 권총으로 스스럼없이 자폭했다.

“당시 김선우 동지에 대하여 인민들은 그분의 손을 잡고 "우리 사령관! 우리 사령관!"하며 환호했다. 이는 바로 그분의 생애가 바로 전남 인민들의 투쟁사임을 확인해 주고 있는 것이다.” (김영승 선생님 증언)

시신은 1995년 윤기남, 이복순, 류낙진 선생님 등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이 몇 차례의 답사 속에 백운산 상봉 등산로 입구(현재의 6.15봉)에서 발견됐다. 당시 김선우 사령관의 기요원이었던 이복순 선생님이 김선우 사령관의 유골임을 확인하였으며, 후에 살아남은 동지들은 시신 발굴 지점을 기리기 위해 6.15고지로 명명했다고 한다.

토벌대들은 보통 빨치산들이 죽으면 머리나 코, 귀를 베어갔으나 김선우 사령관만은 산 귀퉁이(현재의 6.15봉)에 온전히 묻어 주었다고 한다. 현재는 선산인 보성군 웅치면에 안치되어 있다. 표지판 아래에는 서골 쪽으로 당시 환자트(간호처)가 있었다고 한다.

박동기 소장은 김선우 사령관이 같은 보성출신, 봉강 정해룡 선생의 동생 정해진 선생에 의해 혁명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그 후 활동 연혁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박동기 소장이 당일 6.15봉우리 현장에서 회원들에 의해 발견된 70여년 전 'M1' 소총 탄피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박동기 소장이 당일 6.15봉우리 현장에서 회원들에 의해 발견된 70여년 전 'M1' 소총 탄피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현장에서는 회원들에 의해 발견된 갈라 터진 M1'소총 탄피 1개 등 2개나 발견되어 7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날의 치열했던 흔적들을 생생히 말해 주었다.

우리들은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신선대, 상봉을 향해 출발하였다. 상봉에서는 신현익 산행대장이 6.15산악회에 오래간만에 출정하여 구슬진 노래로 회포를 풀어 주었으며, 6.15합창단 등의 노래로 등반노정의 피로를 가셔주었다.

회원들은 백운산 상봉 정상에서 노래와 구호로 또는 공지사항 등을 통하여 등반여정을 풀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회원들은 백운산 상봉 정상에서 노래와 구호로 또는 공지사항 등을 통하여 등반여정을 풀었다. [사진제공-6.15산악회]

 


손팻말을 들고 단체 사진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시 빨치산들이 곡식을 찧어먹던 확독터(돌절구), 전남도당트(88능선 부근) 등은 가지 못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하산하였다.

뒤풀이는 섬진강 넘어 화개장터에 있는 식당에서 참게와 기막힌 된장으로 맛을 낸 해물찌게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회원들은 이 국물맛에 취하여 거의 2시간 동안이나 반주와 노래로 그동안의 회포를 진하게 풀었다.

이 자리에서는 6.15산악회 김재선 총대장, 코리아국제평화포럼(KIPF) 류경완 대표 등이 뜻깊은 산행이라면서 감사 인사말과 소감 등을 전해 주었다.

권오헌 선생님께서 ‘백운산 산행에 붙여’라는 인사말을 자필로 전해 오셨다. [사진제공-6.15산악회]
권오헌 선생님께서 ‘백운산 산행에 붙여’라는 인사말을 자필로 전해 오셨다. [사진제공-6.15산악회]

 


이번 백운산 산행에서는 6.15산악회 회장인 권오헌 선생님께서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백운산 산행에 부쳐’라는 자필로 쓴 인사말을 통해 “이 뜻깊은 백운산 산행에서 산화한 열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 뜻을 이어가는 큰 성과가 있길 기대하겠습니다”라며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 주셨다.

끝으로 비전향장기수 양원진(94) 선생님께서는 마음으로, 김영식 선생님, 양희철 선생님, 박희성 선생님께서는 불편한 노구를 이끄시고, 이번 백운산 산행에 기꺼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시어 더욱 빛나는 산행이 되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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