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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이 땅의 ‘사상, 학문 그리고 양심의 자유’를 의심한다
<기고> ‘왕재산 사건’과 관련된 압수수색을 당하며 드는 생각
2011년 12월 07일 (수) 17:49:14 유영호

유영호 (‘왕재산 사건’ 관련 압수수색 대상자)


어제(12월 6일) 아침 7시 30분쯤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의하여 우리 집은 압수 수색되었다. 압수수색영장에는 최근 ‘왕재산’(남한의 북한 지하당조직) 사건으로 구속된 임 모씨의 지령에 의하여 내가 왕재산조직의 포섭대상자들을 상대로 민통선 기행을 안내했으며, 또한 그 기행의 일환으로 북한영화를 상영하였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인터넷 글을 통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북한영화를 권하는 등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을 선전했다는 이유이다. 물론 이것은 압수 수색영장의 첫 장에 간단히 요약되어 있는 내용이며, 영장의 전체적인 양은 눈으로 보아 대략 100페이지 정도 되었다. 참고로 나에게 이러한 선전선동활동을 지시했다는 왕재산 사건 구속자 임 모씨는 나의 대학동기이다.

출판의 자유는 존재하는가?

경찰은 컴퓨터와 외장하드 등을 하드카피하였으며, 집안의 책장에 꽂힌 모든 서적과 자료들을 하나하나 뒤졌다. 혐의 내용과 관계없이 모든 것을 다 가져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옷장과 베란다, 자동차 그야 말로 집안의 모든 것을 샅샅이 뒤져 증거자료를 찾는다고 난리였다. 그러면서 하나 둘 증거자료라고 추려내는 것을 보니 나는 기가 찼다.

내가 집필하여 이미 출간된 민통선 기행서 <하나를 위하여>(선인, 2008)를 비롯하여 <북한영화 그리고 거짓말>(학민사, 2009) 그리고 여러 대학교수들과 함께 공저로 참여한 <21세기 민족주의 - 재생적 담론>(통일뉴스, 2010)을 제일 먼저 추린 것이다.

내가 집필한 서적뿐만 아니라 강정구교수의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당대, 2002) 등 몇몇 단행본서적이 그 대상이었다. 정식으로 출간되어 일반 서점에서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이러한 서적이 그들에게는 이적표현물로 보였나 보다.

과연 대한민국에 출판의 자유는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내가 이러한 서적을 집필하기 위하여 복사나 인터넷 등에서 찾아 제본해둔 여러 학술자료 역시 압수대상이 되었다.

사상의 자유는 존재하는가?

참고로 나는 현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통일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재 박사과정 5학기에 재학 중이며 박사논문을 집필하고 있는 처지이다. 논문의 주제야 나의 전공분야에 따라 당연히 ‘북한’이 될 수밖에 없으며, 구체적으로 <북한영화를 통해 본 주체사상의 변화와 발전>에 대하여 논문을 구상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논문 집필을 위하여 모아둔 여러 북한자료들이 모두 압수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보며 ‘과연 대한민국에는 근대국민국가의 기본권인 사상 및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북한관련 자료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한 사건도 벌어졌다. 내가 박사과정 수료를 위하여 작년쯤 수강한 강의 ‘북한원전강독’의 교재 역시 그들에게는 압수의 대상이었다. 더욱 우스운 것은 그 강의를 하신 교수님은 다름 아니라 얼마 전까지 국정원에서 고위직을 지내시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신 분이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경찰들의 눈에는 ‘민족’나 ‘통일’ 같은 어휘가 이적표현으로 느껴지는가 보다.

뿐만 아니다. 내가 정기구독하고 있는 월간지 <민족21> 수십 권을 몽땅 가져간 것이다. 특정 호만 가져간 것이 아니다. 그야 말로 ‘몽땅’이다. 정부의 허가를 받고 정식으로 출간된 서적조차 그들에게는 문제인 것이다. 또 나는 현재 양심수후원회의 회원으로 매월 이곳의 소식지를 받아보고 있다. 이것 역시 모두 압수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개인의 추억과 사생활마저 압수대상이 되고 만 현실

웃지 못 할 압수대상이 또 있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1980년대 대학 동아리의 소식지 역시 압수대상이 된 것이다. 동아리 명칭은 <산하사랑>으로 역사기행을 주로 하는 모임이었다.

당시 컴퓨터도 없어 손으로 깨알같이 글을 쓰고 그것을 복사하여 10여장 묶어 학기말에 동아리 소식지로 발간 된 것이다. 나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추억이기에 20여년이 지난 지금껏 보관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들에게는 그것이 나의 ‘사상의 원천’을 설명해줄 자료로 필요했나 보다.

뿐만 아니다. 요즘 모든 개인의 사생활이 스마트폰에 집적되는데 그것 역시 압수해버렸다. 나의 친인척 및 친구, 선후배 등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빼앗아 간 느낌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최대한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근대국민국가가 나의 모든 사생활을 빼앗아 간 것이다.

나는 그들의 과잉 공권력 행사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

결국 나는 이러한 과잉 압수수색에 대하여 수동적으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판단되어 그 현장을 떠나며 그들의 모든 행동을 부정하였다. 물리적으로 그들의 행위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경찰은 자신들의 압수수색을 지켜보며 그 행위의 정당성에 대하여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나는 그 현장을 떠남으로써 그들의 행위를 부정하였다.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국가권력의 폭력성에 대하여 내가 저항할 수 있는 방식이란 고작 그들의 공권력을 수동적으로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에 불과했음이 나를 슬프게 만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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